쉰들러 리스트
잔인한 전쟁 속에서 따뜻했던 사람의 이야기
별점 5/5
줄거리
쉰들러는 돈을 좋아하는 사업가다.
당시 유대인 노동자들을 싼값에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쉰들러의 회사에는 유대인 노동자들밖에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유대인들을 한 마을에 몰아넣고 매일 일정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데려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노동증명서가 있으면 안데려가서 쉰들러가 열심히 노동증명서를 챙겨줬는데 나중에는 그것도 무용지물이고 그냥 학살하면서 데려가기 시작했다.
쉰들러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산에서 아내랑 말타다가 유대인마을에서 학살이 일어나는 걸 보게된다. 포스터의 빨간 옷을 입은 아이는 그 때 쉰들러의 시선을 잡은 아이인데, 부모님을 잃고 혼자서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아기다. 영화가 내내 흑백으로 진행되는데 저 아기만 색이 들어가있다.
아무튼 그 모습을 보고 쉰들러는 뭔가를 느끼며 말을 돌린다. 그리고 이후에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일꾼으로서 계속 고용하고, 뇌물을 주어서 유대인들을 수용할 수용소를 짓기도 한다. 물론 그 수용소는 노동자들은 쉰들러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이름 하에 다른 수용소들과 다르게 군인들의 폭력도, 즉결사살도 없다.
쉰들러가 돈많은 사업가이고 인싸여서 고위계층과도 친하게 지냈고, 쉰들러의 회사가 군대에 납품할 물건들을 만드는 회사였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을 데려오는 게 가능했을 거다.
후기
쉰들러의 마음을 바꾼 가장 큰 계기는 빨간 옷을 입은 아기였다. 유대인마을에서의 학살을 볼 때 쉰들러의 시선을 잡았던 빨간옷을 입은 아기는 나중에 유대인들의 시체를 태우는 곳에서 시체로 날려지고, 불 속으로 떨어지는데, 그 장면을 쉰들러가 본다. 이후로 쉰들러는 돈보다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한명이라도 더 많은 유대인들을 수용소에서 빼내 자신의 고향에 있는 공장으로 가는 열차에 태운다. 가는길에 쫄깃했던게 남녀를 열차를 나눠서 태웠는데 여자를 태운 열차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잘못가서 사람들 다 머리밀고 옷갈아입고 가스 샤워를 당할 뻔한다. 다행히 위험했던 순간에 쉰들러가 달려와서 다 내 노동자들이라고 데려가긴 한다.
결국 쉰들러 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유대인들은 모두 무사히 쉰들러의 공장에 들어와서 안식일도 챙기고, 군인들의 위협도 없이 1945년까지 보낸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나치에서는 군인들을 통해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을 받지만 쉰들러의 연설에서 이제 전쟁이 끝났고 당신들은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유대인들 모두 죽지 않고 군인들도 그냥 나간다.
쉰들러는 어쨌튼 나치에서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도망을 쳐야했는데, 도망치기 직전에 유대인들이 금니를 모아서 만들어준 금반지를 선물로 받고는 자기 옷의 금속 뱃지와 자기 차를 보면서 이것들을 팔았으면 총 11명을 더 구할 수 있었다면서 울면서 후회하다가 떠난다. 쉰들러는 처벌을 받지 않고, 죽은 후에는 그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이 무덤에 와서 돌멩이들을 무덤에 놓아주며 영화가 끝난다.
실화 바탕이라는 게 너무 대단한 것 같다.
승승장구 하던 쉰들러가 그 살얼음판 같은 곳에서 힘을 가지고 뇌물을 줘가면서 유대인들을 구해냈다.
주된 악역은 나치군의 아몬 괴트이다. 아몬 괴트가 한 일을 몇개 보면
건축 담당 유대인 한 명이 와서 토목 공사가 잘못됐으니 다 부수고 처음부터 지어야된다고 와서 호소하자, 바로 죽여버리고 유대인 말 듣는다.(그럴 거면 왜죽인;)
자기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에서 보이는 유대인 수용소를 겨냥하고, 일이 느린 유대인을 쏴서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유대인 한 명을 사랑하면서도, 그놈의 인종에 집착하면서 니가 날 유혹한거라며 결국은 바뀌지 않는다.
전에 학교에서 근로하면서 신문들을 훑어볼 때 전체주의에 관한 글 한 문단이 인상깊었다.
전체주의의 독특한 언어
그 시절 독일에서 암살은 '특별조치', 고문은 '강력심문', 강제수용소행은 '대피'라 불렸다. '광신적'은 자기들을 수식할 때는 긍정적 의미로, 적을 수식할 때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됐다. '이질적 종자'나 '영원한 유대인' 등 적을 공격하는 다양한 상투어들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 역시 전체주의자들 특유의 언어 습관에 속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57654#home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거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언어를 잃는다는 것이 사람들의 나라에 대한 정신에 얼마나 큰 타격이 가고,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를 많이 배웠었는데 반대로 지배를 위해 기존의 언어를 살짝 바꿔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몬 괴트가 유대인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심으로 유대인이 죽어 마땅한 사람 취급을 받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였을 거다. 하지만 그 진심을 누를 만큼 나치의 전체주의에 녹아들었고, 그만큼 자기 행동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많은 유대인을 죽이고, 사랑하던 유대인도 미워할 수 있었을거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같이 그렇게 미쳐있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